공자는 도척과의 대화를 통해 '인의도덕'은 그것을 중요시 하는 사람에게만 힘을 발휘 한다는걸 깨닫게 된다.
또 모든 사람이 '인의도덕을 깨닫는 것도 아니다. 기독교 교리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다.
당시는 세상이 혼란하여 군자는 없고 이익만 쫓아 다니는 사기꾼들이 더 크고 많은 이득을 얻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 잘못을 반성하고 도덕을 따를리가 있겠는가?
지금이라고 그 때와 다를까?
장자(莊子) 잡편(雜篇) 제29편 도척(盜跖) 편 해설
공자와 유하계(柳下季: 춘추 시대 노나라의 대부인 유하혜柳下惠를 부르는 다른 이름)는 친구였는데(『장자(莊子)』에는 두사람끼리 친구였다는기록이 있지만 다른 고증에서는 두인물이 살았던 시대가 100년 가까이 차이가 나서 서로 만나서 친구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는 역사적 의문으로 남아 있다), 유하계에게는 동생이 한 명 있었는데 동생은 이름이 유하척(柳下跖)이며 사람들은 그를 ‘도둑’이라는 의미로 도척(盜跖)이라 불렀다. 도척은 부하 9,000명을 거느리고 천하를 종횡무진하며 제후국을 공격했다. 그러면서 가옥을 부수고 소와 말을 빼앗고 부녀자를 납치했다. 또한 재물만 탐하고 분수를 모르며,부모와 형제는 생각하지 않고 조상에게 제사도 지내지 않았다.
도척이 지나가면 큰나라에서는 군사들이 성을 지키기에만 바쁘고 작은 나라에서는 군사들아 모두 작은 산성에 숨어버려서 백성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를 두고 볼 수 없던 공자가 유하계에게 말했다.
"모름지기 부모란 자식을 훈계하고 형은 아우를 가르쳐야 하네.
만일 부모가 자식을 훈계하지 않고 형이 아우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부자와 형제의 관계도 특별하다고 할 것이 없지 않겠는가?
현명하고 뛰어난 자네가 동생이 사람들에게 도척이라 불리며 세상에 해를 끼치는데도 가만히 둔다니, 내가 다 부끄럽구먼. 내가 자네를 대신해 동생을 설득해 보겠네.”
당시에 공자는 자신만만했다.
그는 자신이‘인의도덕’에 소양이 깊으니 반드시 도척이 잘못을 뉘우치고 개과천선하여 새 사람이 되게 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유하계는 자신의 아우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공자의 낙관적인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고 심지어 도척을 찾아가지 팔라며 말리기도 했다. 그가 보기에 공자가 간다고 해도 헛 수고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선생께서 부모는 자식을 훈계하고 형은 아우를 가르쳐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만일 자식이 부모의 훈계를 듣지 않고 아우가 형의 가르침을 받지 않는다면 선생처럼 말을 잘한다고 해도 어쩔 도리가 있겠습니까?
도척을 보자면, 생각은 뿜어져 나오는 물과 같고 감정 기복은 폭풍과 같습니다. 또한 어떤 적이든 막아낼 만큼 용맹하고 사나우며 자신의 과실을 덮을 만큼 말재간도 뛰어납니다.
자신의 뜻을 따르면 기뻐하고 따르지 않으면 화를 내며 말로 사람에게 모욕을 주는 일도 쉽게 여깁니다.
그러니 선생께서는 절대 그를 찾아가지 마십시오."
그러나 자신감 넘치는 공자가 유하계의 말을 들을 리 없었다.
공자는 안회에게 마차를 몰게 하고 자공을 옆에 태워서 바로 도척을 만나러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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